[EDITOR'S CUT] 책, 끝까지 다 읽어야 할까? 생성 AI 요약이면 충분할까?

[EDITOR'S CUT] 책, 끝까지 다 읽어야 할까? 생성 AI 요약이면 충분할까?
Photo by Šárka Krňávková / Unsplash

[에디터의 노트]

아래는 일본의 저명한 편집자 이와사 후미오(岩佐 文夫) 씨가 기고한 칼럼을 번역한 글입니다. 생성 AI 시대의 독서법에 대한 그의 통찰은 매우 시의적절합니다. 저는 이 글이 한국 독자들에게 더 큰 가치를 제공할 수 있도록, 원문의 내용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추가적인 해설과 분석을 덧붙였습니다. 본문에 언급된 책과 핵심 개념에 대한 배경지식을 제공하고, 정보 습득을 넘어 지혜 형성을 위한 구체적인 독서 전략을 제시하여 논의를 확장했습니다.


이와사 후미오 (岩佐 文夫)

요즘 나는 매일 아침 한 시간가량 생성 AI ‘클로드(Claude)’와 대화를 나눈다. 예상보다 훨씬 더 깊이 있는 대화에 감탄하며 이제는 아침의 소중한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 했던 생각들을 툭 던져보면 제법 근사한 답변이 돌아오고, 거기서부터 더 세밀한 대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누군가와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면 아침에 클로드와 나눈 대화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게 된다. 이제는 사람과 AI, 어느 쪽이 더 필수적인 대화 상대인지 헷갈릴 정도다.

얼마 전에도 ‘토이도쿠(問い読)’의 공동 창업가인 이노우에 신페이 씨와 클로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최근 『약함에 대한 고찰(弱さ考)』이라는 책을 막 출간한 참이다. 이노우에 씨는 자신의 책을 생성 AI에게 요약시켜 봤는데, 그 결과가 놀라울 정도로 핵심을 꿰뚫고 있었다고 한다. 직접 쓴 장본인이기에 요약의 퀄리티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그가 보증할 만큼 그 요약은 훌륭했다. 나 또한 내가 직접 편집했던 책을 AI에게 읽혀 보았는데, 요약 내용에 흠잡을 데가 전혀 없었다.

생성 AI가 만든 요약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높은 객관성’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거기에는 개인적인 감상이나 해석이 일절 개입되지 않는다. 그래서 다소 밋밋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감정이나 해석이 배제된 담백함이 오히려 장점으로 다가왔다. 꽤 괜찮은 방식이다. 나는 책을 읽기 전에 다른 사람의 서평을 잘 읽지 않는 편이다. 그저 “이 책 좋았어” 정도의 감탄사 섞인 감상평만 듣고 싶어 한다. 책에 대한 타인의 해석은 되도록 보지 않고 나만의 시선으로 읽기를 즐긴다. 그런 의미에서 생성 AI가 만든 요약은 내게 아주 안성맞춤인 셈이다.

이 정도 수준의 요약을 생성 AI가 해낸다면, 인간이 굳이 객관적인 ‘책 요약’을 만들 필요는 거의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요약의 퀄리티가 이토록 훌륭하다면, 앞으로 우리가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읽는 것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이 질문을 곱씹다, 직접 실험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The_Coddling_of_the_American_Mind
[에디터의 노트] 실험 대상 도서: 『상처받기 쉬운 미국 대학생들』

이 책의 원제는 **『The Coddling of the American Mind』**로,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와 그렉 루키아노프가 공동 집필한 베스트셀러입니다. 이 책은 2010년대 이후 미국 대학가에 퍼진 '안전주의(safetyism)' 문화를 비판합니다. 학생들이 불쾌하거나 상처받을 수 있는 모든 생각과 의견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믿음이 오히려 그들을 지적으로, 정서적으로 취약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트리거 워닝(trigger warning)', '안전 공간(safe space)' 등의 개념이 어떻게 표현의 자유와 학문적 탐구를 위축시키는지를 날카롭게 분석하여 미국 사회에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와사 편집자가 이 책을 실험 대상으로 삼은 것은, 복잡한 사회 현상과 심리적 메커니즘을 다루고 있어 요약만으로는 온전히 파악하기 어려운 책의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상으로 삼은 책은 『상처받기 쉬운 미국 대학생들』. 본문만 4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이다. 글자 수로 환산하면 대략 22만 자 정도 될 것이다.

이 책을 클로드에게 “10,000자로 요약해 줘”라고 요청하니, 한 편의 리포트 같은 결과물이 나왔다. 10,000자 분량을 읽는 데 걸린 시간은 15분. 이 시간만으로 400페이지 책의 내용을 상당히 자세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 다음,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 시작했다. 두꺼운 책이었지만 순식간에 몰입해서 읽었다. 총 8시간 정도가 걸렸다. 미리 요약본을 읽어 둔 덕분에 책의 핵심 키워드를 쉽게 이해하며 ‘중요한 부분’을 놓치지 않고 제대로 읽을 수 있었다.

자, 그렇다면 요약본을 읽는 데 걸린 15분과 완독하는 데 걸린 8시간의 차이를 ‘무엇을 얻었는가’라는 관점에서 평가한다면 어떨까? 8시간이면 이런 요약본을 32권이나 읽을 수 있는 시간인데 말이다!

아직 명확한 답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현재의 생각을 적어보려 한다.

첫째, 독서는 **‘신체적인 활동’**이다. 책을 읽는 8시간은 저자의 생각을 온전히 따라가려 노력한 시간이자, 그 과정 자체를 몸으로 겪어낸 시간이다. 이런 시간적 체험이 있었기 때문일까, 나는 이 책에 대해 나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다. 책에 쓰인 20만 자를 전부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의 강약을 조절하며 나만의 방식으로 정보를 입력한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 책에 대해 하는 이야기는 상당히 편향된 시각이겠지만, 이것이야말로 나 자신의 해석이다. 이 ‘자신만의 해석’을 손에 넣는 데 8시간이 걸린 것이 아닐까.

[에디터의 노트] '깊이 읽기'와 뇌 과학

이와사 편집자가 말한 ‘신체적 활동으로서의 독서’는 뇌 과학에서 말하는 **‘깊이 읽기(Deep Reading)’**의 개념과 맞닿아 있습니다. 『다시, 책으로』의 저자 매리언 울프에 따르면, 깊이 읽기는 단순히 정보를 해독하는 것을 넘어, 비판적 분석, 공감, 성찰과 같은 고차원적인 사고를 담당하는 뇌 회로를 활성화시킵니다. 8시간 동안 한 권의 책에 몰입하는 행위는 뇌가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고, 자신의 경험과 연결하며, 새로운 관점을 구축하는 복잡한 신경 활동을 수행하게 합니다. 반면, 빠르고 효율적인 요약 읽기는 정보를 ‘훑어보는(skimming)’ 방식에 가까워, 깊이 있는 사유와 내면화 과정이 생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8시간의 독서는 단순한 시간 투자가 아니라, 지식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뇌의 재구성 과정인 셈입니다.

둘째, 나는 8시간 동안 ‘미국 대학생들은 왜 상처받기 쉬워졌는가?’라는 주제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나의 사고와 경험, 과거에 읽었던 책들을 총동원하여 저자의 주장을 해석하려 노력했다.

생성 AI가 만든 요약을 읽을 때는 머리가 그 정도로 복잡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아, 그런 거구나’ 하고 내용을 받아들일 뿐, 온몸으로 체화되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성 AI 요약은 정말 강력하다. 어설프게 훑어볼 바에는 차라리 요약본으로 충분하다. ‘정보 수집을 위한 독서’의 시대는 저물었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사유하고 해석하기 위한 독서’**일 것이다. 동시에, 생성 AI를 활용해 독서를 더욱 대화적인 활동으로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도 크게 느낀다.


[에디터의 시선] AI 시대, '지혜'를 위한 하이브리드 독서 전략

이와사 편집자의 통찰은 ‘AI 요약이냐, 완독이냐’의 이분법적 선택의 문제를 넘어섭니다. 중요한 것은 두 가지를 모두 활용하여 독서의 효율과 깊이를 극대화하는 전략적 접근입니다. 이를 **‘하이브리드 독서 모델’**이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1. 1단계: AI 요약으로 ‘탐색하고 설계하라’ (Pre-Reading)
    • 목적: 정보의 필터링 및 독서 계획 수립
    • 방법: 관심 있는 책의 AI 요약을 먼저 읽습니다. 이를 통해 책의 핵심 주장과 구조를 빠르게 파악하고, 이 책이 나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판단합니다. 이와사 편집자가 경험했듯, 요약본은 완독 시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훌륭한 ‘지도’가 됩니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읽어야 할 단 한 권’을 골라내는 탐색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줍니다.
  2. 2단계: 완독으로 ‘체화하고 사유하라’ (Deep Reading)
    • 목적: 지식의 내면화 및 자신만의 해석 구축
    • 방법: 1단계에서 선별된 책은 시간을 들여 처음부터 끝까지 읽습니다. 밑줄을 긋고, 메모하며, 저자의 주장에 질문을 던지는 능동적인 과정에 집중합니다. 이 단계는 정보를 지식으로, 지식을 ‘나만의 관점’으로 승화시키는 핵심 과정입니다. AI가 제공할 수 없는 비판적 사고, 공감 능력, 창의적 연결이 바로 여기서 일어납니다.
  3. 3단계: AI와 대화하며 ‘확장하고 완성하라’ (Post-Reading)
    • 목적: 생각의 심화 및 관점의 객관화
    • 방법: 책을 다 읽은 후 생긴 궁금증이나 반론을 AI에게 질문합니다. "저자의 A 주장에 대해 다른 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하지?", "이 책의 개념을 현재 한국 사회 문제에 적용한다면 어떨까?" 와 같은 질문을 통해 생각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AI는 훌륭한 스파링 파트너가 되어 나의 해석이 얼마나 타당한지 검증하고, 생각의 빈틈을 메워줄 수 있습니다. 이와사 편집자가 마지막에 언급한 **'대화적 독서'**의 가능성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생성 AI는 독서의 적이 아니라, 우리의 지적 여정을 돕는 강력한 조수가 될 수 있습니다. 정보 수집은 AI에게 맡기고, 인간은 사유와 해석, 그리고 지혜를 창조하는 고유의 영역에 더욱 집중해야 합니다. AI 시대를 살아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왜 읽을 것인지 전략적으로 설계하는 능력일 것입니다.